허슬러(PD)의 MUSIC APPROACH

가수며 작곡가며 MC로 명성이 자자한 정원수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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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부터 아이돌 제작까지"...'K-POP 시초' 작곡가 정원수를 만나 인터뷰 해 보았습니다.
2017년 대림동에 위치한 (주)케이팝스타에서 아주 바쁜 그를 인터뷰 하였다.

95년 중국 현지서 한국어 음악방송 시작...K-POP 전도사 역할을 한 것으로 케이팝포문은 확실히 열은 전도사이다.
트로트 가수왕과 10대가수 매니저 출신으로 작사, 작곡,과  MC,  가수 대학교수 등 다양한 이력과 지금은 아이돌 음반제작자, 까지 '만능엔터테이너' 정원수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는 'K-POP 한류'의 시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자 94년 중국 최고의 록커 최건 내한공연을 성사시켜 KBS빅쇼로 내보냈고, 한중수교 4주년을 기념해 북경 인민대회의당 본당에서 최초의 한류 공연 중한우호의밤을 개최하여. 당시 13,000명의 중국인들의 가슴에 한국 대중음악악을 전달했다. 이는 중국 CCTV에 방영돼 전 중국에 한류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주)케이팝스타 대표이사 이면서 (사)한국방송가수연합회 중앙회장 이기도 한 정원수는 설운도의 '미련의 부르스' 박상철의 '너무 예뻐', '울 엄마' 서주경의의'반칙', 오승근의 '하늘의여자' 고영준의 '나믿고' 오은주의 '사랑의포로' 박재란의 꼴찌면어때서  조경수의 훈장 등 많은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및 작곡을 했으며.중국가수 진웨뉘에게 북경아가씨 라는 곡으로 전 중국에 공전의 히트를 나게했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만 500여 곡이며, 히트한 곡만 50여곡에 달한다. 최근에는 조항조의 '남이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79년 신중현 록밴드가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절 부산에서 원수와 파이브스타 의 리드기타 겸 싱어로 활약한 정원수는 80년 초 '조심조심'이라는 노래로 방송가에 가수로 데뷔 했었다 그러나 당시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설운도 현철 그리고 이후 지금까지 귀순배우 김혜영 고영준 남진 등 많은 가수들의 그림자로 뒷바라지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는 방송 MC뿐만 아니라 아이돌 제작까지 하며 그야말로 대활약을 하고 있다.

Q. 작곡을 시작한 계기
경남 고성 시골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 전기를 접했다. 트럭 운전수였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수가 되는데 이바지한 인물이 그보다 어린 매니저였다는 사실을 알고 가수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고,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음악통론, 작곡법이론 편곡법이론 화성학개론 등 음대 서적들을 읽으며 독학했다. 모든 이론을 마스터한 후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에 통발 공장이 많았다. 근데 저녁에는 공장이 빈다. 그 공장에서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들어서 연습했었다. 드럼 깡통을 두드리고, 오르간, 기타를 사서 연습했다. 발음도 안 되는 팝송 부르고 그랬다.

Q. 트로트 장르 외에 어떤 곡 작업을 하는지
중학생 때 음악 이론을 공부한 후 처음 만든 곡이 '애야'와 '미련의 부르스' 같은 트로트였다. 그때 작곡한 '미련의부르스'는 20년 뒤 설운도가 부르면서 히트하게 됐다. 트로트뿐만 아니라 로고송, 단체 노래도 많이 만든다. 시대를 담은 노래도 만들고 국가 행사곡, 스포츠 음악 공모에 당선되기도 한다. 지역 군 시 도가도 만든다.

Q. 주로 악상이 떠오르는 때는?
작곡을 해야겠다 마음먹지 않는다. 오히려 놀면서 쓴다. 주로 지방 갈 때 드라이브를 하면서 많이 작곡한다. 재래시장 같은 시끄러운 곳에 가도 악상이 떠오른다. 고독하게 곡을 쓰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때도 곡을 만든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몽해서 '봉화산 부엉이'라는 추모곡을 만들기도 했다.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결정되던 2012년 유치축하곡 "올림픽코리아" 도 만들었다 지금 평창올림픽 행사와 방송에 많이 쓰이고 불려지고 있다.

Q.자신이 서포터즈 하는 가수가 10대가수 또는 가수왕 이 됐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당시 시골 논두렁에 혼자 앉아서 기타 치면서 노래를 만들었었다. 작곡하면서 혼자 다짐했었다. 내 곡을 부르는 사람을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이후 가요계에 들어와서 아티스트가 가수왕을 수상하면서 나도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고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만하거나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들은 국민적인 가수로 인기와 부 를 누리지만 자신은 명예만 있을뿐 인기와 부는 가지지 못해 아쉽다,  지금 이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요계에 발을 디딘 후 한 번도 슬럼프를 겪어본적도 없다.
지금도 여전히 항상 기타를 들고 악상이 떠 오르면 작곡을 하고 있다. 잠도 많이 못자고 너무 바쁘다. 하지만 지금은 후배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현재 아이돌 음반을 제작중에 있다.

그러나 만능인인 정원수도 간작한 푸른꿈이 있었다. 들어보니 명MC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그러나 이미 명MC가 되어있었다.여러프로에 메인MC로 활동하고 있으니 그 꿈을 이루는 중이라 사료됬다.

정원수는 35년 지기 기자 후배로  닉네임을 지어주었다. 미국 여자이지만 오프라 윈프리의 윈프리를 따서 윈프리정이라 명명해주었다.
윈프리정은 아주 흡족하며 만족하는듯 했다.

세상의 최고 MC 정원수,윈프리 정 모두 기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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